<백두대간 산마을>21.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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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53,086회 작성일 18-12-27 14:15본문
정감록(鄭鑑錄)은 60여가지에 달한다.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며 내용을 보태고 빼다 보니 이렇게 많아진 것이다.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그러나 중심 내용만큼은 똑같다.「살기 좋은 새 세상」을 바란다는 것이다.재해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못 살았던 옛 시절,새 세상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컸던 것이다. 단양(丹陽)지방은 「동록잡기(東錄雜記)」라는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다.승지는 살기 좋은 이상향을 말한다. 그러나 단양사람들은 단양땅에서 진정한 승지는 의풍리(충북 단양군 영춘면)라고 말한다.
의풍리의 지형을 찬찬히 살펴보면 승지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의풍리에서 태백산.소백산이 갈라지고 충북.강원.경북 3개도가나뉜다.요즘처럼 교통편이 좋은 시절에도 의풍리는 지프가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실감난다 .
그러나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막상 의풍리에 닿으면 넓은 분지로 이뤄진 마을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선다.의풍리는 산이 높고 아름다우며 땅이 걸어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단양사람들 말은 사실이었다.
산마을치고는 농사도 잘 된다.논농사도 하며 특히 대추와 고추가 잘된다.대추농사는 가구당 20~30가마를 수확할 정도다.
이런 외딴 승지마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숨어 지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김삿갓은 이름이 병연(炳淵),호는 난고(蘭皐)였다.선천(宣川)부사였던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洪景來)난 때 항복하는 바람에 폐족을 당했다.어머니 함평 李씨는 어린 병연을 데리고 경기도 광주.이천,강원도 평창을 거쳐 영월에 숨는 다.
병연은 20세 때 영월 도호부 동헌의 백일장에서 홍경래에게 항복한 조부를 꾸짖는 글로 장원급제를 한다.
그러나 뒤늦게 자신이 조부를 비난한 것을 알고 죄책감에 몸부림치다 가장 외진 곳인 의풍리에 터를 잡고 살았다.그러나 그것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삿갓을 쓰고 방랑하다 57세에 광주 무등산 근처에서 죽었다.
김삿갓의 묘와 비석이 있는 곳은 좀 특이하다.
개울을 하나 두고 단양군 의풍리와 영월군 와석리(노루목)로 나뉘는데 시비와 비석.제각은 단양땅에 있고 묘는 영월 쪽에 있다.
단양과 영월 모두 김삿갓이 자신들의 고장과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동호인과 문인들에게 김삿갓이 어디에서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양향토문화연구회 총무 김동식(42)씨는 『이곳에서 인근 문인들이 1년에 두 번씩 삿갓제를 지내면서 시심(詩心)을 키우고 우의를 다진다』며 『이 때 많은 시동호인들도 참가한다』고 말했다. 의풍리를 찾는 길은 힘들다.단양과 영월 양쪽에서 포장공사를 하고 있지만 삿갓묘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직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한다.
마치 스스로 험한 길을 택했던 김삿갓의 인생여정을 다시 밟는 듯하다. 김삿갓은 눈을 감을 때 『저 등잔불을 꺼 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시는 고통 속에서 나오나 보다.
볼거리 먹거리
단양은 볼거리가 많다.천혜의 자연을 지녔고 신라.고구려.백제3국의 문화가 골고루 섞여있다.
구한 말(1894년)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그녀의 기행문에서 『강이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며 높은 봉우리 세 개로 이루어진 산(도담삼봉) 밑으로 흘러간다.공원처럼 생긴 도담마을(단양)은 웅대할 뿐만 아니라 풍요롭다』며 단양의 아름다움 을 찬양했다.
볼거리 많은 단양에서 가장 알려진 것은 단양팔경이다.도담삼봉.석문.옥순봉.구담봉.상선암.중선암.하선암.사인암 등 8가지 볼거리를 말한다.
그러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또 다른 단양팔경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단양에선 「제2의 단양팔경」이라 부르는 볼거리다.단양을 중심으로 반경 25㎞내에 있는 다리안산.죽령폭포.칠성암.북벽.온달산성.금수산.일광굴을 말한다.문의 단양군 문화공보실((0444)423-4011).
도토리 빈대떡과 육회를 즐기고 싶으면 장다리식당((0444)423-3960)을 권하고 싶다.도토리를 원료로 한 이 집의 빈대떡은 동동주와 곁들이면 맛이 더욱 좋다.오학식당((0444)22-3313)은 묵밥과 수육이 일품이다.미락식당((0444)22-2605)은 보양식으로 인기가 좋은 염소전골을 잘한다.
자석벼루제조 신명식씨
단양에서만 나는 명물 가운데 자석(紫石)벼루가 있다.붉은 색이 도는 돌로 만든 벼루를 말한다.검은 빛이 나는 오석(烏石)벼루보다 배 이상 가격이 비싸다.그만큼 귀하고 만들기가 쉽지 않다.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석벼루를 만들고 있는 신명식(46.영춘벼루공예사 대표.사진)씨는 아버지대에서 끊어졌던 자석벼루 제조를 재현했다.『원래 할아버지가 자석벼루를 처음으로 만들었어요.
권문세가에 주로 공급했다더군요.그러나 아버지 대에 와서 자석광산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자석벼루제조는 맥이 끊어졌죠.』 그러나 그는 20세때 벼루 만드는 일에 뛰어들면서 한편으론 반드시 조상의 옛 기술을 찾아야한다고 결심했다.신씨는 어릴적 선친에게서 들은 『단양땅에서 자석벼루를 했다』는 막연한 귀동냥을 근거로 광산을 찾아 나섰다.결국 그는 단양 가곡 쪽에서 광산을 발견했고 자석벼루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사용하는 분들이 자석벼루는 먹이 잘 갈린다고 하더군요.그러다 보니 글씨를 쓸 때 붓이 잘나가는 거죠.그러나 돌이 단단해서 세공은 어려운 편입니다.』자석벼루는 15년이상 청와대에 납품됐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청와대는 납품받은 벼루를 교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었다.일본에도 수출하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영춘벼루공예사(0444)423-7071,서울직매장(02)720-9991.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그러나 중심 내용만큼은 똑같다.「살기 좋은 새 세상」을 바란다는 것이다.재해와 전쟁이 끊이지 않고 못 살았던 옛 시절,새 세상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컸던 것이다. 단양(丹陽)지방은 「동록잡기(東錄雜記)」라는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다.승지는 살기 좋은 이상향을 말한다. 그러나 단양사람들은 단양땅에서 진정한 승지는 의풍리(충북 단양군 영춘면)라고 말한다.
의풍리의 지형을 찬찬히 살펴보면 승지라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의풍리에서 태백산.소백산이 갈라지고 충북.강원.경북 3개도가나뉜다.요즘처럼 교통편이 좋은 시절에도 의풍리는 지프가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실감난다 .
그러나 비포장도로를 한참 달려 막상 의풍리에 닿으면 넓은 분지로 이뤄진 마을모습이 편안하게 다가선다.의풍리는 산이 높고 아름다우며 땅이 걸어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단양사람들 말은 사실이었다.
산마을치고는 농사도 잘 된다.논농사도 하며 특히 대추와 고추가 잘된다.대추농사는 가구당 20~30가마를 수확할 정도다.
이런 외딴 승지마을에 방랑시인 「김삿갓」이 숨어 지낸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김삿갓은 이름이 병연(炳淵),호는 난고(蘭皐)였다.선천(宣川)부사였던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洪景來)난 때 항복하는 바람에 폐족을 당했다.어머니 함평 李씨는 어린 병연을 데리고 경기도 광주.이천,강원도 평창을 거쳐 영월에 숨는 다.
병연은 20세 때 영월 도호부 동헌의 백일장에서 홍경래에게 항복한 조부를 꾸짖는 글로 장원급제를 한다.
그러나 뒤늦게 자신이 조부를 비난한 것을 알고 죄책감에 몸부림치다 가장 외진 곳인 의풍리에 터를 잡고 살았다.그러나 그것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삿갓을 쓰고 방랑하다 57세에 광주 무등산 근처에서 죽었다.
김삿갓의 묘와 비석이 있는 곳은 좀 특이하다.
개울을 하나 두고 단양군 의풍리와 영월군 와석리(노루목)로 나뉘는데 시비와 비석.제각은 단양땅에 있고 묘는 영월 쪽에 있다.
단양과 영월 모두 김삿갓이 자신들의 고장과 관련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동호인과 문인들에게 김삿갓이 어디에서 살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양향토문화연구회 총무 김동식(42)씨는 『이곳에서 인근 문인들이 1년에 두 번씩 삿갓제를 지내면서 시심(詩心)을 키우고 우의를 다진다』며 『이 때 많은 시동호인들도 참가한다』고 말했다. 의풍리를 찾는 길은 힘들다.단양과 영월 양쪽에서 포장공사를 하고 있지만 삿갓묘까지 가기 위해서는 아직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한다.
마치 스스로 험한 길을 택했던 김삿갓의 인생여정을 다시 밟는 듯하다. 김삿갓은 눈을 감을 때 『저 등잔불을 꺼 주시오』라고 했다고 한다.시는 고통 속에서 나오나 보다.
볼거리 먹거리
단양은 볼거리가 많다.천혜의 자연을 지녔고 신라.고구려.백제3국의 문화가 골고루 섞여있다.
구한 말(1894년)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그녀의 기행문에서 『강이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내며 높은 봉우리 세 개로 이루어진 산(도담삼봉) 밑으로 흘러간다.공원처럼 생긴 도담마을(단양)은 웅대할 뿐만 아니라 풍요롭다』며 단양의 아름다움 을 찬양했다.
볼거리 많은 단양에서 가장 알려진 것은 단양팔경이다.도담삼봉.석문.옥순봉.구담봉.상선암.중선암.하선암.사인암 등 8가지 볼거리를 말한다.
그러나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또 다른 단양팔경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단양에선 「제2의 단양팔경」이라 부르는 볼거리다.단양을 중심으로 반경 25㎞내에 있는 다리안산.죽령폭포.칠성암.북벽.온달산성.금수산.일광굴을 말한다.문의 단양군 문화공보실((0444)423-4011).
도토리 빈대떡과 육회를 즐기고 싶으면 장다리식당((0444)423-3960)을 권하고 싶다.도토리를 원료로 한 이 집의 빈대떡은 동동주와 곁들이면 맛이 더욱 좋다.오학식당((0444)22-3313)은 묵밥과 수육이 일품이다.미락식당((0444)22-2605)은 보양식으로 인기가 좋은 염소전골을 잘한다.
자석벼루제조 신명식씨
단양에서만 나는 명물 가운데 자석(紫石)벼루가 있다.붉은 색이 도는 돌로 만든 벼루를 말한다.검은 빛이 나는 오석(烏石)벼루보다 배 이상 가격이 비싸다.그만큼 귀하고 만들기가 쉽지 않다.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석벼루를 만들고 있는 신명식(46.영춘벼루공예사 대표.사진)씨는 아버지대에서 끊어졌던 자석벼루 제조를 재현했다.『원래 할아버지가 자석벼루를 처음으로 만들었어요.
권문세가에 주로 공급했다더군요.그러나 아버지 대에 와서 자석광산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자석벼루제조는 맥이 끊어졌죠.』 그러나 그는 20세때 벼루 만드는 일에 뛰어들면서 한편으론 반드시 조상의 옛 기술을 찾아야한다고 결심했다.신씨는 어릴적 선친에게서 들은 『단양땅에서 자석벼루를 했다』는 막연한 귀동냥을 근거로 광산을 찾아 나섰다.결국 그는 단양 가곡 쪽에서 광산을 발견했고 자석벼루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사용하는 분들이 자석벼루는 먹이 잘 갈린다고 하더군요.그러다 보니 글씨를 쓸 때 붓이 잘나가는 거죠.그러나 돌이 단단해서 세공은 어려운 편입니다.』자석벼루는 15년이상 청와대에 납품됐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청와대는 납품받은 벼루를 교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으로 주었다.일본에도 수출하는데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영춘벼루공예사(0444)423-7071,서울직매장(02)720-9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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